대한제국은 19세기 말, 자주적인 근대 국가로 거듭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 과정에서 기술 도입은 국가 개혁의 핵심 수단 중 하나로 간주되었다. 특히 전기는 근대화의 상징으로 여겨졌으며, 그 시작점에는 1898년에 설립된 ‘한성전기회사’가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선이 전기를 아주 늦게 도입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대한제국 시기부터 서울 일부 지역에서 전기 보급이 이루어졌으며, 이는 도시 생활과 사회 구조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본 글에서는 한성전기회사의 설립 배경, 전기 보급 과정, 사회적 반응 등을 살펴보고, 한국 전기 역사의 출발점을 재조명한다.
한성전기회사의 설립 배경
한성전기회사는 1898년, 미국인 콜브란과 조선 정부의 합작으로 설립되었다. 당시 대한제국은 고종의 주도로 근대적 시설을 도입하려 했고, 전차 및 전기 공급 사업은 그 중심에 있었다. 정부는 외국 자본과 기술을 도입하여 서울에 전기 인프라를 설치하는 프로젝트를 승인했고, 이로 인해 최초의 민간-국가 합작 기업이 탄생했다. 회사는 경성 내 전차 운행과 동시에 전력 공급 사업도 맡게 되었다.
전기 보급의 실제 범위와 방식
처음에는 경성 중심부, 특히 종로 일대와 경복궁 근처 관공서에 전기가 공급되었다. 가정용 전기는 극소수 부유층에게만 제공되었으며, 대부분은 거리 조명과 관청, 전차 운행용으로 사용되었다. 발전 시설은 청계천 근처에 위치했으며, 석탄을 이용한 증기기관 발전 방식이었다. 전선은 전주를 따라 설치되었고, 전기 사용은 한정적이었지만 도시 공간의 ‘빛’과 ‘속도’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
사회적 반응과 문화적 충돌
전기라는 신문물에 대한 사회적 반응은 양극단으로 갈렸다. 일부 지식인과 관료층은 이를 ‘근대 문명의 상징’으로 받아들였지만, 일반 민중은 전기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을 표출했다. 당시에는 ‘전기를 쓰면 목숨이 단축된다’는 소문이 퍼졌고, 실제로 전깃줄 감전 사고가 발생하면서 불신이 커졌다. 또한 전차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면서, ‘귀신의 수레’라는 별명까지 붙을 정도로 이질적인 존재로 여겨졌다.
한성전기회사 전기 보급 요약
| 항목 | 내용 | 특이사항 |
|---|---|---|
| 설립 연도 | 1898년 | 미국 자본과 조선 정부 합작 |
| 공급 지역 | 경성 중심부 (종로, 경복궁 주변) | 관청과 거리 조명 중심 |
| 기술 방식 | 석탄 기반 증기기관 발전 | 청계천 인근 발전소 |
| 사회 반응 | 지식인 환영, 민중의 두려움 | 전차 사고 및 괴담 존재 |
결론
한성전기회사는 단순한 민간 기업이 아니라, 대한제국이 근대 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실험이자 상징적인 존재였다. 전기의 도입은 서울의 공간 구조를 바꾸었고, 야간 활동 가능성을 열었으며, 도시화의 기초를 마련했다. 동시에 새로운 기술이 사회에 도입될 때 발생하는 문화적 충돌과 적응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한성전기회사의 경험은 오늘날의 기술 도입과 비교해볼 때도 여전히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